세계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모든 이론가가 문화를 중심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문화적 제국주의'라는 표현에서 항상 명사의 힘이 구조적 지배를 연상시키는 반면, 세계화는 보다 진행 적이다. 그것은 식민 통치를 벗어나 사유화된 세계 체제에서 중복되고 상호 결정하는 영향권들, 그리고 생산과 소비가 유연하게 전문화한 경제적인 삶의 새로운 형식들을 나타낸다. 문화적 제국주의와는 달리, 세계화는 일관성이 결여되고 다각적인 권력의 여러 형태와 방향을 용납하며, 말하는 사람에 따라 그것을 시장의 융통성 또는 민중의 저항을 위한 터전이라고 평가한다. (톰 린슨, 1991년, 175~6쪽, 마셜, 1996년, 197쪽)
물론 국제적인 문화 상품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자유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성이다. 우리는 미국 내에서의 개봉에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거친 다음 국내외 비디오, 케이블, 텔레비전 방송망을 타고 돌아다니는 과정에서의 수많은 공간적, 포괄적, 그리고 규격화의 변형을 추적하며 할리우드 영화의 성공과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악 소이와 로빈스, 1992년, 14쪽) 문화는 교류뿐 아니라 차별이라는 본질도 지니기 때문에, 국제적인 내용물의 교역에서 관문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것을 제한하는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포드 자동차는 오랫동안 “다국적이 되기 위해서는 어디에서나 민족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사훈을 내걸고 일해왔다. 그리고 제너럴 모터스는 그들의 표어 "핫도그, 야구, 사과파이, 그리고 셰브런에”를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고기파이, 축구, 캥거루, 홀든 자동차"라고 현지화했다. 하나하나의 미국 영화는 구체적인 저마다의 시장에서 개별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100가지에 이르는 포괄적 설명을 배정해 놓는다.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 Dances with Wolves」의 경우에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기록 영화 식으로 극화한 작품이라고 선전하여 1990년에 프랑스 관객에게 팔았고, 맬컴 X Malcolm X」(스파이크리 성조기를 불태우는 포스터를 만들어 프랑스에서 선전했다. (왔어, 1995년, 433쪽, 다낭, 1995년) 그런 얘기들은 세계화한 회사들이 활동하는 시대에 민족성이라는 해석 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합리화의 새로운 형식들은 차이점의 인정을 지역 시장성에 맞춘 자본의 필요조건 가운데 한 부분으로서 표준화한다. 다국적 자본주의 양식이 아직도 이렇게 전개되는 가운데, 할리우드 영화 산업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문화 노동력의 새로운 국제적 분배라엘 태생의 제작자)의 영화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 존 탁
할리우드는 지리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곳이다. 우리는 할리우드가 어디인지 사실은 잘 모른다.
- 존 포드
이념과 교역으로서의 영화 사업에 대해서 미국 정부가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왔음에도 불구하고, 뉴딜 정책 입안자들은 할리우드의 국내 기업 연합과 수직적인 통합에 반대했다. 반독점 결정과 텔레비전의 등장이 겹치면서 1946년부터 10년이라는 기간에는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 편수가 3분의 1가량 줄고 수입이 배 이상 증가하는 결과를 맞았다. 세계 관객이 늘어남에 따라 영화는 '뺑소니 제작'을 위해 해외로 나갔고, 현지 촬영은 줄거리를 차별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1950년과 1973년 사이에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세계 각처에서 영화사들이 시설물을 사들이는 바람에,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겨우 60퍼센트만이 미국에서 제작되었다. (크리스토퍼심과 스토퍼, 1986년) 1949년에는 타지에서 제작된 영화가 19편이었다.(구백, 1984년, 56~57쪽) 20년이 지나는 사이에 그 숫자는 183편으로 늘어났는데 유럽에서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공동 제작은 하나의 규범이 되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제작에 착수하기에 앞서 전 세계 배급업자들로부터 자금을 긁어모으는 오늘날의 범세계적 사전 판매의 개척자는 지노 데 라우렌티스였다. 미국의 영화 기구들은 외국 극장과 배급 회사를 사들이고 부담과 이윤을 현지 기업들과 함께 나누는 관행에 익숙해졌다. (이조들, 1988년, 119쪽) 1990년대에는 워너 브러더스와 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처럼 범세계적인 영화 배급 기업 연합이 등장하게 되었다. (설레, 1991년, 93쪽, 와스코, 1994년, 226쪽) 이것은 문화 노동력이 어쩌면 국제적으로 새롭게 구분되는 현상의 증거로 받아들여도 될 듯싶다.
우리들은, 뭐랄까, 워너 브러더스의 이름을 넣음으로써 신빙성의 도장을 찍는 셈인 그런 제품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폴 번호 이번 Paul Verhoeven(미국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 감독)이 감독하고,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앤서니 홉킨스가 주연을 맡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