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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의 역사
우리는 모두가 미국 영화의 전문가이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40퍼센트에서 90퍼센트가 미국 영화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1993년에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인 영화 100편 가운데 88편을 미국이 제작했고, 1994년에는 미국 영화가 처음으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로크웰, 1994년, H1) 그렇다고 다른 영화문화들의 중요성을 부정하겠다는 뜻은 아니어서, 세계 영화 작가들 가운데 다수는 유색 인종이며, 할리우드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이념적 주제를 담아 여러 통로를 거쳐 그들의 작품을 공급한다. (쇼했고 스캠, 1994년, 27)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문화와 뉴욕 상업은 직접적이거나 암시적인 다른 방법에 의해 전 세계 화면 오락을 지배하고,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이 거둔 극적인 성공은 북아메리카의 음악, 텔레비전, 광고, 인터넷, 체육을 수출하기 위한 본보기 노릇을 했다. 위성 텔레비전과 비디오 녹화기의 확산은 민족적 방송의 규제 철폐와 더불어 시청각 기술의 전파를 계속해서 증가시킨다. (와스코, 1994년, 233쪽) 그러한 지배력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경제학은 영화 예술을 이론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대부분의 생산 형식과는 달리, 극영화의 제작은 개별적으로 차별화한 제한된 제품을 생산하는 소수의 대형 회사들이 지배한다. 대부분의 투자는 철저한 실패로 끝나서, 대형 회사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다. 관객을 위한 얘깃거리가 비용에 대해서 적대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현상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가격의 역할에 대한 고전적 경제학의 기본 개념들에 역행하고, 영화 내용물에 담긴 의미로 인해서 영화의 경제적 실적에서는 외적인 요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전통적인 경제학은 할리우드의 역사적인 성공을 변화하는 경제적 및 사회적 여건들에 잘 적응했던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금융 체제와 유연한 문화적 관리에 따라서 설명한다. 그런데다가 무성 영화 시대에는 미국의 거대한 국내 시장을 위해서 만든 영화들이 영어권의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잘 팔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어가 국제 언어이기 때문에 음향의 도래는 이런 과정에 도움이 되었는가 하면, 여러 소수민족이 다양하게 섞인 미국의 인적 구성은 다른 문화권들보다 훨씬 보편적인 화법 양식을 촉진했다. 이러한 힘들이 자유경쟁 기업을 앞세우는 원칙에 따라 계속해서 성장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애치슨과 몰, 1994년, 271~3) 이런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정치·경제적 접근법은 이런 성공이 관객과 영화 못지않게 행정부 또한 결정적 요소라는 시각에서, 시장과 이념을 지배하는 위치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비록 때로는 갈등과 혼란을 일으키기는 해도 협동적인 관계를 유지한 자본과 국가의 시도가 가져온 결과라고 제안하기도 한다.
영화 산업은 음악극 영화에다 라디오 방송과 축음기판의 판매를 접목하여 수평적인 통합도 이루었다. 1939년 상무성 추산으로는 전 세계에서 상영된 영화 가운데 65퍼센트를 미국에서 공급했다.
사실상 내용물 거래의 균형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에 프랑스는 한 주일에 10여 편의 영화를 미국에 팔았으며, 1914년에는 북아메리카 영화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기술의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했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상영된 작품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지배했다. (발리오, 1993년, 32~33) 하지만 1907년에 이르러서는 바이 타 그래프 Vita graph 영화사가 모든 영화를 유럽용과 국내용으로 두 벌의 음화를 만들었다. (그 그라지아, 1989년, 57쪽) 1909년에는 북아메리카 회사들이 국내 시장에서 모든 경비를 회수하게 되었고, 다른 시장을 겨냥해서 수출 가격을 적당히 조종할 여유가 생겼다.(오리건, 1992년, 313쪽) 1915년과 1916년 사이에 미국의 필름 수출은 3천6백만 자에서 1억 5천9백만 자로 늘었으며, 반면에 수입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1천6백만 자에서 1920년대 중반에는 7백만자로 줄었다. (왕, 1990년, 10, 22쪽) 그 기간에 극영화가 선을 보이면서 할리우드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판매를 개시했으며, 지역 배급자들을 사들임으로써 예를 들어 브라질의 제작을 쓸어버리기도 했다. (쇼했고 스태프, 1994년, 28쪽) 1919년부터는 해외 수입이 할리우드 예산에서 중요한 항목으로 간주하였고, 1920년대에는 할리우드의 주요 수출 대상국이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그리고 브라질이었다. (암수, 1987년, 48쪽) 1930년대의 해외 판매는 영화 산업의 수입에서 3분의 1부터 절반까지 이르렀다. 음향이 기본 화한 다음에는 영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음악극에 이끌렸고, 영화사들은 국내 흥행작의 외국어판을 만들어 냈다.반응형'영화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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