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성의 이론은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라틴 아메리카로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 국제 문화 단체들과 7개국 동맹 Group of 77 안에서 우호적인 여건을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이런 입장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유네스코에 의해 채택되기도 했던 그 이론은 모든 문화의 동등성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과 문화 형태의 연합을 고집하던 유네스코의 복합적인 다원 문화주의로부터 위협을 받았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1980년대 중반에 동맹에서 탈퇴하여, 문화와 통신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위해 동맹이 배정했던 자원을 고갈시켰습니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의존성의 개념화는 자본주의, 탈식민성, 국내 및 국제 계급 관계, 국가 의역할, 그리고 토착 문화의 조정에 대한 부적절한 이론화로 인해서 좌파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토착 문화에 의한 할리우드 제품의 조정이라는 이 마지막 문제는 문화적 제국주의 명제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특별한 중요성을 지닙니다. 아프리카를 찾아간 백인 심리학자에 관한 미셸 푸코의 얘기는 미학적으로 차이가 나는 체제들의 세밀한 묘사로 인해서 교훈적인데, 하자가 현기 관객들에게 그가 영화로 보여준 서술체를 기억나는 대로 대기해 보라고 하자, 그들은 그가 관심을 보인 등장인물이나 줄거리 구성보다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는 빛과 그림자" 이관심의 초점을 맞춥니다. 1994년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실시한 텔레비전에 관한 조사에서 밝혔듯이, 아마도 문화적 정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너무 지역적이어서 수출한 방송극의 "전자에 의해 이루어진 유대는 초라하기 짝이 없을 지경"입니다. 이스라엘,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텔레비전 연속극 「댈러스」에 대한 반응을 연구한 타마르 리비스와 엘 리 후 커트는 미국의 이념을 성공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전제 조건을 밝히는데, 내용물은 해외에서 미국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정보를 포함하고, 입력한 그대로 기호가 해독되어야 하며, 받아들이는 쪽의 문화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문화 집단들 사이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논한 사람들 가운데 "아주 소수의 순수한 이성을 발견했을 뿐이고, 다양한 해석 틀로 인해서 갖가지 두서없는 해석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실상 미국 오락물에 대한 불안감은 그 자체가 억압적이고 허상에 지나지 않는 '민족 문화'에 대한 우려라는 가면을 쓰고 자주 나타나곤 했습니다. 어떤 문화의 보호 움직임이 보여주는 특이한 청교도주의는 많은 미국 오락물이 보여주는 개방적 양상들을, 영국의 경우에서처럼 계급 구조를 말살한다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그런가 하면 민족 영화라고 해서 하나같이 꼭 할리우드로부터 비평적인 거리를 두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민족 영화는 할리우드를 모방하려고 노력했으며, (영어를 사용하는 하인들과 빠른 자동차들이 등장하는 청년 문화를 그린 1980년대 인도네시아의 시보의 계열의 영화가 특히 그런 성향이 두드러졌습니다. 한편 몇몇 나라에서는 수입한 대중문화의 면모들을 토속 문화와 혼합하여 에이레에서처럼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의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국가들은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에 거북함을 느끼는 문화적 수입품들에 대한 완충재로서 할리우드 내용물을 들여오기도 하는데, 파키스탄이라면 인도의 유사성보다는 북아메리카의 상이함을 더 선호할지도 모릅니다.
문화적 제국주의 담론 분야에서 손꼽을 만한 이름인 아르망과 미셸 마뜰라르는 오늘날 그것을 입증이 가능한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지적인 연대성을 합법화하는 동맹이라고 봅니다. 문화적 제국주의는 국가 간의 관계, 특히 신생 국가들과 그들을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들과 미국의 연계에 대한 지역적 결산을 거쳐 국제적인 내용 성을 철저하게 파헤쳐보려는 목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했습니다. 교류의 불평등성에 대한 집중된 관심이 기호와 그것에 대한 수용성보다는 흐름의 방향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한 고발은 주권국 소비자를 영웅화하는 신고전적 경제학의 전제에 대해 지역 문화가 저항하게끔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런 비평의 확산은 제삼 세계로부터 제일세계로 이론 자체를 전파하는 좋은 예가 되었으며, 쿠바 혁명과 페론주의 과 브라질의 새 영화 운동과 더불어 제3영화의 이상을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명제가 수정되었다고 해서 영화 무역 현실이 흡족하게 타결을 보았다는 뜻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