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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드레 바쟁과 몽타쥬 연구
    영화연구 2022. 5. 17. 07:53

     영화이론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인물이 바로 앙드레 바쟁입니다. 그의 글은 번역되어서 이미 한국의 영화학도들에게도 읽히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는 뜨겁게 영화를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헐리우드 영화 연구보다는 유럽, 프랑스 영화 연구에서 주로 다뤄지는 인물이지만, 영화를 뛰어넘어서 예술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그의 책을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이젠슈타인에게 촬영한 한 장면은 몽타주 구조에서 다른 촬영한 장면과 경쟁하게끔 배열하기 전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몽타주 montage(이어 붙이기)는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는 여러 촬영한 장면으로 구성하는 특수한 편집 기법의 하나입니다. 촬영한 한 장면은 앞과 뒤에 연결된 다른 장면과 연관되어 의미를 갖게 됩니다. 촬영한 장면의 구성에서 나타나는 공간적 역학, 촬영한 장면의 길이, 시각적으로 주제상으로 다양한 내용을 담은 서로 다른 촬영 장면을 병치시킬 때 얻어지는 장단, 이 모두가 신중하게 계산된 흡인의 몽타주를 이루는 셈입니다. 에이젠슈타인에게는 몽타주가 단순히 영화 예술인의 가장 중요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그의 미학적 · 정치적 통제력을 위한 기호 노릇을 했습니다. 촬영한 장면 자체는 생명력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촬영기사 에두아르드 띠쎄의 도움을 받아 에이젠슈타인은 강력하고도 역동적 인작품을 구성했지만, 장면의 촬영은 단순한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촬영한 장면을 율동적이고 상충되며 동적인 몽타주의 시간적 구조로 전환하는 일이 감독의 예술성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몽타쥬의 연구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에이젠슈타인 입니다. 몽타쥬가 잦아지면 영화는 감독의 의도성을 무겁게 짊어지는 모습을 띄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1920년대 영화에서는 롱샷으로, 원샷으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촬영을 지향했습니다. 또 그 정신이 다큐멘터리의 근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에이젠슈타인은 편집이 상충하는 형식들의 시각적인 역동성을 창조해낼 뿐 아니라 칼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상응하는 영화를 만들어낼 잠재력을 갖추었다고 보았다. 촬영한 장면들 사이에서 형식과 내용이 상호 작용하면서, 하나의 장면이 앞이나 뒤에 이어진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세 번째의 무엇, 즉사상과 감정과 인식의 변증법적 종합을 만들고, 그리하여 관객을 위해 혁명의 역사에 관한 지적인 인식을 이끌어내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몽타주는 영화 예술인으로 하여금 변증법적인 방법으로 예술뿐 아니라 역사를 전해 주는 도구였습니다. 그는 근본적이고 추진력을 지닌 몽타주의 미적 그리고 이념적 힘을 굳게 확신했으며, 영화보다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먼저 몽타주 기법이 발전했다고 믿었습니다. 몽타주는 영화의 발명과 더불어 정치적으로 동원될 운명인 미학적 사건인 셈이었습니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1958년 사망할 때까지 비평가이자 영화 이론가로 활약했던 그는 한 세대의 감독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프랑스 새물결(누벨 바그)’ 운동의 아버지로 간주되었습니다. 바쟁의 영화 미학은 에이젠쉬째인의 생각과는 정반대입니다. 바쟁에게는 편집이란 영화 형식의 파괴였고, 사실상 영화 예술의 본질을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그에게는 촬영기가 렌즈 앞의 세상을 바라본 모습을 촬영하고는 편집하지 않은 장면이야말로 영화 예술의 미학적 핵심이었습니다. 에이젠쉬째인 미학의 뿌리가 정치적이었다면, 바쟁의 미학은 종교적이었으며, 영화의 영상은 세상을 본디 모습 그대로 영혼까지 보여주며, 명상하는 촬영기의 눈으로 세계의 시간적 및 공간적 존재성을 확인해 주는 능력을 지녔으리라는 신념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바쟁에 의하면 편집은 이런 신념을 부정하는데, 편집으로 인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관객이 시간과 공간의 전체성과 계속성을 보는 기회가 잘려나가기 때문입니다. 편집은 조작적이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보여주고 싶은 내용만을 우리들에게 강요합니다. 촬영한 장면은 경건하고, 또한 정치적입니다. (구도 안의 모든 사물이 가장 가까운 물체에서부터 가장 먼 물체까지 화면 속에서 동일하게 선명해 보이도록 하는 조명 및 렌즈의 효과를 뜻하는) 깊은초점이 동원되면 더 좋겠지만, 중단하지 않고 촬영한 장면은 모두에게 민주주의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얼굴이나 물체를 잘라내거나 앞으로 내놓아서 관객이 무엇을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영화인이 선택하는 대신, 관객은 화면 내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를 자유롭게 취사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안에서도 권력관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그는 깨닫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관객이 직접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하게 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믿은 것이 놀랍습니다.

     바쟁의 영화 예술은 회화적입니다. 그것은 구도, 조명, 깊숙하고 계시적인 촬영기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구도와 조명과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복잡하게 분절하는 행위, 즉 화면 연출의 정립은 바쟁 이론에서 두드러집니다. 사실상 바쟁은 영화의 초창기 역사를 묘사하면서 세상의 모습들을 보존하기 위해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진행 중인 상상력의 충동을 설명하는 방법으로서 회화를 예로 들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에이젠쉬째인의 영화 역시 회화적 영화로서, (에이젠쉬째인의 영화 활동과 동시대에 일어난 회화 운동인) 러시아의 구성파와 입체파에 비유할 만한 동역학의 한 가지 형식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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