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성 표현양식에서 가장 흥미롭고 지속적인 본보기라면 기본적인 대화 장면의 편집이라고 할 수 있다. 대화가 녹음되기 이전인 무성 영화 시대에 이미 다음과 같은 공식이 등장했다. 대화는 해당 장면에 등장하는 두 인물을 함께 촬영한 화면에서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향하는 일련의 어깨너머 촬영 장면 over-the-shoulder shots의 교차 편집을 시작한다. 이런 방식은 조금 바뀌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연속장면 내에서 인물 중 한 사람만이 듣거나 말하는 장면이 중간에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연속장면의 뼈대는 어깨너머 장면이 왔다 갔다 하다가 두 인물을 담은 본디 화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간단한 대화라고 해도 여러 번에 걸쳐 2인 등장 장면과 어깨너머 구도의 장면을 수없이 찍는다. 복잡한 얘기 같지만 확실하다. 표준 절차이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관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런 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줄 안다. 어깨너머 촬영 기법을 사용하면 연속장면에 등장하는 값비싼 두 명의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은 줄곧 촬영 현장에 나와야 할 필요가 없다. 대역의 어깨 뒤에서 찍은 장면이 본디 배우의 어깨 뒤에서 찍은 그림과 똑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상반된 두 연속장면을 꼭 같은 장소에서 찍을 필요조차도 없다. 눈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잘라 함께 엮으면 두 장소가 하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결과로 제작자와 필름 편집자는 촬영 현장에서보다 훨씬 비용이 덜 드는 환경에서 많은 양의 촬영 장면을 가지고, 많은 선택의 여지를 누리면서 일하게 된다. 여기에서 얻은 결과가 촬영소의 기술자에서부터 극장에 앉은 관객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해하는 서술적 정보의 표준 양식이다.
또한 이 과정은 통합하는 구조를 마련한다. 이것은 대단히 역설적인 면이다. 어깨너머 장면의 편집 조각들 또는 연속성 표현양식의 어떤 다른 부분도 다수에서 통합을 끌어내고, 시선을 집중시키며, 주인공들이 주고받는 시선 사이의 공간과 이야기의 흐름 속에다 우리들을 봉합해 버린다. 장면 전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더 기대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엇가르며 지속해서 장면을 전환하는 편집 기법은 우리를 그들의 이야기 공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는 이론이 나오기도 했다. 누가 쳐다보면, 우리는 “저 주인공이 무엇을 보는 걸까?" 하는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주인공이 쳐다보는 인물(이나 대상)을 보여줌으로써 필연적인 응답을 한다. 이렇게 시선을 대조시키는 기법은 등장인물과 상황이 우리를 둘러싼 듯싶은 매력적인 상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는 마치 관객이 영화 내용물의 일부가 되어서, 영화를 읽고 영화 속으로 읽혀 들어가는 셈이다(다얀, 1992년), 고전적인 연속성 표현양식이 지구력을 가장 확실하게 발휘하는 면은 욕망과 만족의 요소, 꼼짝도 못 하게 만드는 바로 이런 요소에서 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알 프렛 히치콕은 쳐다보는 등장인물과 그가 바라보는 대상 사이로 단순히 자르고 들어가기만 하는 것으로도 압도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환상 Vertigo」(1958년, 우리나라 비디오 제목은 「현기증)의 초입부에서, 제임스 스튜어트가 연기하는 스코티는 오래전에 죽은 어떤 사람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한 여자를 뒤따라 차를 운전하며 샌프란시스코의 거리를 돌아다닌다. 이 연속장면은 비교적 단순한 일련의 장면과 역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스코티가 차를 운전하는 장면을 보고, 마치 그의 시각으로 보듯이 스코티의 차에서 창을 통해 마들렌의 차를 본다. 그녀가 미술관에 도착한다. 스코티가 그녀를 바라보고, 히치콕은 그림을 구경하는 그녀의 시점에서 촬영한 장면과 스코티가 지켜보는 그녀의 모습 장면을 삽입한다. 그녀가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간다. 스코티가 쫓아가고, 그의 시선은 그녀를 따라 문으로 간다. 문이 열리면 스코티의 시선이 안으로 들어가고, 어둠은 꽃집의 현란한 꽃의 잔치로 바뀐다. 이 연속장면 내내 우리는 스코티의 시선으로 지켜보지만, (스코티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수수께끼를 보게 되며, 나중에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거짓임을 알아차린다. 그가 뒤쫓은 여자는 스코티가 생각하던 그런 여자가 아니어서, 스코티와 관객 양쪽이 모두 속은 셈이다. 감독은 고전적 형식의 요소들을 이용하여 관객의 반응을 조작하고, 관객을 주요 등장인물의 시선과 가깝게 묶어 두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그것은 상당히 왜곡된 시선임이 드러난다. 관객은 환상을 받아들인 셈이다.